“
노동은 더 이상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가치의 창조가 아니라, 주로 사회적 관계인 직업을 의미한다. 무직은 자신과 이웃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자유라기보다는 슬픈 게으름이 되었다. - 시장 의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만족을 얻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나 그 노력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이 아니라 노동력을 자본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을 하여 얻는 만족이 아니라 생산을 지휘하는 사회관계에서 얻는 직장과 배경, 직책과 승진 등의 지위가 되었다.
“ p.101
⠀
“
우리 사회의 대안은 평범한 사람들이 전문가가 끼워 넣는 필요에 부딪힐 때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부정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 p.104
⠀
#누가나를쓸모없게만드는가 :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이반일리치 지음
#느린걸음 출판사
⠀
아버지는 몸이 조금 안 좋아져도, 그 조금보다 더 안 좋아져도 결코 병원에 가시지 않는다.
이유는 ‘의사들은 돈만 밝히는 장사꾼들’이라는 것이다.
⠀
며칠만 쉬어도 낫을 만한 것도 이 검사 저 검사로 돈을 받고 이 약 저 약을 처방을 한다는 불신에 기반을 하고 있다.
이런 얘기에 어머니는 “저 양반은 왜 저렇게 부정적이야”라고 못마땅해 하신다.
얼마 전에 갑자기 왼쪽이 마비 증상을 느끼시고 그때야 병원을 다녀오셨지만 그 의사에 대한 생각은 변함없으신 듯하다.
⠀
어머니의 말처럼 아버지는 부정적인 사고를 하고 계신 걸까?
⠀
불신하고 있는 신 건 맞지만 그것은 부정적보다는 비판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좀 더 옳은 것 같아 보였다.
비판이 커져 불신이 되고, 그것이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
1978년, 급진적 사상가로 알려진 이반 일리치가 쓴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어머니가 읽었다면 ‘뭐 저렇게 부정적인 사람이 있어!’라고 할 만한 내용이다.
⠀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라고 제목이 쓰여있지만 실제 원제는 <The right to useful unemployemt> 즉,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이다.
⠀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들까?
⠀
쓸모, 즉 유용함에 대한 정의에 대해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나의 쓸모는 내가 아닌 사회에서 정의된 직업 리스트에서 찾아야 하는 세상이다.
그 직업 리스트의 상위권과 하위권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나의 쓸모는 결정된다.
그 리스트에 없는 노동은 ‘쓸모없음’ 즉 ‘상품성이 없다.’로 이어진다.
⠀
경력단절,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되는 워킹맘의 현실에서 꼭 나오는 단어다.
⠀
분명 이런 세태에 대해서, 남/여로 구분되어 한쪽에 치우치는 불합리에 대해서는 못마땅하지만 문득 이 ‘경력이 단절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
이 경력은 개인의 전문성에 대한 것일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갈증을 얘기하는 것일까?
⠀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아 고용이 되어야 하는 능력에 대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음’이라기보다 ‘하고 싶은 고용이 될 수 없음’을 뜻한다.
⠀
나의 경력은, 나의 노동은 결국 누군가에게 고용이 되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이 바탕이 깔려있다.
이것은 당연한, 자연스러운 걸까?
⠀
나의 쓸모와 유용함은 누군가에게 고용이 되어야 하고, 그 고용 내에서도 직책과 승진으로 평가받는 것이 당연한 걸까?
⠀
이반 일리치는 이 얘기를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로 풀어낸다.
사실 ‘전문성’ 혹은 ‘전문가’에 대한 본성과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 내용은 넷플릭스에서 나온 ‘결혼이야기’에서 잠시나마 맛볼 수 있다.
⠀
그는 말년에 한쪽 뺨에 생긴 혹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나의 아버지처럼 현대식 의료진단과 치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92년 암 진단을 받았지만 여전히 병원은 가지 않았다.
2002년에 사망한 것을 보면 진단 후 10년간 지낸 것인데, 병원을 갔었다면 더 오래 살았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
예전에 읽은 <피로사회>보다는 읽기 수월했고, 이 문장은 무슨 뜻이지 갸우뚱할 때면 바로 뒤에 친절하게 ‘예를 들어보자’라며 말을 건넨다.
나의 쓸모를 찾고자 하는 분들과 스스로 배우기 보다 반드시 전문가를 찾는 분들이 꼭 한번 읽었으면 한다.
[ 목차 ]
서문
들어가며
1 위기인가 선택인가
2 전문가의 제국
3 산업사회의 환상
4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5 적들의 반격
6 현대의 자급
[ 지은이 ]
이반 일리치 (Ivan Illich)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교황청 국제부 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빈민가의 아일랜드-푸에르토리코인 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일했다. 1956년에 푸에르토리코 가톨릭 대학 부총장이 되었고, 1961~1976년에는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 일종의 대안 대학인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 설립하여 연구와 사상적 교류를 이어갔다.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다. 80년대 이후에는 독일 카셀 대학과 괴팅겐 대학 등에서 서양 중세사를 가르치며 저술과 강의활동에 전념했다. 『깨달음의 혁명』 『학교 없는 사회』 『공생공락을 위한 도구』 『에너지와 공정성』 『의료의 한계』 『그림자 노동』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등 성장주의에 빠진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에 급진적 비판을 가하는 책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사회, 경제, 역사, 철학, 언어, 여성 문제에도 깊은 통찰들을 남겼다. 2002년 12월 2일 독일 브레멘에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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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더 이상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가치의 창조가 아니라, 주로 사회적 관계인 직업을 의미한다. 무직은 자신과 이웃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자유라기보다는 슬픈 게으름이 되었다. - 시장 의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만족을 얻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나 그 노력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이 아니라 노동력을 자본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을 하여 얻는 만족이 아니라 생산을 지휘하는 사회관계에서 얻는 직장과 배경, 직책과 승진 등의 지위가 되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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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안은 평범한 사람들이 전문가가 끼워 넣는 필요에 부딪힐 때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부정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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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나를쓸모없게만드는가 :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이반일리치 지음
#느린걸음 출판사
⠀
아버지는 몸이 조금 안 좋아져도, 그 조금보다 더 안 좋아져도 결코 병원에 가시지 않는다.
이유는 ‘의사들은 돈만 밝히는 장사꾼들’이라는 것이다.
⠀
며칠만 쉬어도 낫을 만한 것도 이 검사 저 검사로 돈을 받고 이 약 저 약을 처방을 한다는 불신에 기반을 하고 있다.
이런 얘기에 어머니는 “저 양반은 왜 저렇게 부정적이야”라고 못마땅해 하신다.
얼마 전에 갑자기 왼쪽이 마비 증상을 느끼시고 그때야 병원을 다녀오셨지만 그 의사에 대한 생각은 변함없으신 듯하다.
⠀
어머니의 말처럼 아버지는 부정적인 사고를 하고 계신 걸까?
⠀
불신하고 있는 신 건 맞지만 그것은 부정적보다는 비판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좀 더 옳은 것 같아 보였다.
비판이 커져 불신이 되고, 그것이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
1978년, 급진적 사상가로 알려진 이반 일리치가 쓴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어머니가 읽었다면 ‘뭐 저렇게 부정적인 사람이 있어!’라고 할 만한 내용이다.
⠀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라고 제목이 쓰여있지만 실제 원제는 <The right to useful unemployemt> 즉,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이다.
⠀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들까?
⠀
쓸모, 즉 유용함에 대한 정의에 대해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나의 쓸모는 내가 아닌 사회에서 정의된 직업 리스트에서 찾아야 하는 세상이다.
그 직업 리스트의 상위권과 하위권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나의 쓸모는 결정된다.
그 리스트에 없는 노동은 ‘쓸모없음’ 즉 ‘상품성이 없다.’로 이어진다.
⠀
경력단절,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되는 워킹맘의 현실에서 꼭 나오는 단어다.
⠀
분명 이런 세태에 대해서, 남/여로 구분되어 한쪽에 치우치는 불합리에 대해서는 못마땅하지만 문득 이 ‘경력이 단절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
이 경력은 개인의 전문성에 대한 것일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갈증을 얘기하는 것일까?
⠀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아 고용이 되어야 하는 능력에 대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음’이라기보다 ‘하고 싶은 고용이 될 수 없음’을 뜻한다.
⠀
나의 경력은, 나의 노동은 결국 누군가에게 고용이 되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이 바탕이 깔려있다.
이것은 당연한, 자연스러운 걸까?
⠀
나의 쓸모와 유용함은 누군가에게 고용이 되어야 하고, 그 고용 내에서도 직책과 승진으로 평가받는 것이 당연한 걸까?
⠀
이반 일리치는 이 얘기를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로 풀어낸다.
사실 ‘전문성’ 혹은 ‘전문가’에 대한 본성과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 내용은 넷플릭스에서 나온 ‘결혼이야기’에서 잠시나마 맛볼 수 있다.
⠀
그는 말년에 한쪽 뺨에 생긴 혹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나의 아버지처럼 현대식 의료진단과 치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92년 암 진단을 받았지만 여전히 병원은 가지 않았다.
2002년에 사망한 것을 보면 진단 후 10년간 지낸 것인데, 병원을 갔었다면 더 오래 살았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
예전에 읽은 <피로사회>보다는 읽기 수월했고, 이 문장은 무슨 뜻이지 갸우뚱할 때면 바로 뒤에 친절하게 ‘예를 들어보자’라며 말을 건넨다.
나의 쓸모를 찾고자 하는 분들과 스스로 배우기 보다 반드시 전문가를 찾는 분들이 꼭 한번 읽었으면 한다.
[ 목차 ]
서문
들어가며
1 위기인가 선택인가
2 전문가의 제국
3 산업사회의 환상
4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5 적들의 반격
6 현대의 자급
[ 지은이 ]
이반 일리치 (Ivan Illich)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교황청 국제부 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빈민가의 아일랜드-푸에르토리코인 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일했다. 1956년에 푸에르토리코 가톨릭 대학 부총장이 되었고, 1961~1976년에는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 일종의 대안 대학인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 설립하여 연구와 사상적 교류를 이어갔다.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다. 80년대 이후에는 독일 카셀 대학과 괴팅겐 대학 등에서 서양 중세사를 가르치며 저술과 강의활동에 전념했다. 『깨달음의 혁명』 『학교 없는 사회』 『공생공락을 위한 도구』 『에너지와 공정성』 『의료의 한계』 『그림자 노동』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등 성장주의에 빠진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에 급진적 비판을 가하는 책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사회, 경제, 역사, 철학, 언어, 여성 문제에도 깊은 통찰들을 남겼다. 2002년 12월 2일 독일 브레멘에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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